좋은 악기는 소리를 들려주지만, 의미 있는 악기는 시간을 기억하게 한다.
2008년 여름, 대구 계명대학교에서의 추억.
어쩌면 악기는, ‘마법사가 지팡이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지팡이가 마법사를 고른다’는 올리밴더 아저씨의 말처럼, 연주자가 선택하는 것이 아닌 악기가 연주자를 선택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수많은 악기를 사고팔고, 더 좋은 악기를 찾아 떠돌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내 곁에 남았던 악기들은 내가 고른 것이라기보다 각자의 시간에 나를 찾아왔던 것들이었다.
첫 번째 크로니클이 내가 어떤 베이스를 들고 연주자로 살아왔는가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두 번째 크로니클은 내가 왜 베이스를 시작했는가에 대한 이야기이다.
내게 좋은 악기란 말 그대로의 ‘소리가 좋은 악기’와 ‘의미 있는 악기’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좋은 악기는 소리를 들려주지만, 의미 있는 악기는 시간을 기억하게 한다.
이 세 대는 내가 베이스를 좋아하게 된 순간부터, 음악을 계속해온 지금까지 내게 가장 즐겁고 좋은 기억을 남긴 악기들이다.
내가 처음으로 베이스를 전공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만든 악기다.
고등학교 때 밴드부에서 이 악기를 들고 연주했다. 선배들과 밴드를 하고, 학교와 주변 학교의 축제 무대에도 섰다.
그때의 나는 연주를 업으로 삼게 될지, 내가 음악을 계속하게 될지 알지 못했다.
그저 베이스를 치는 것이 너무 재미있었다. 그리고 그 즐거움이 결국 나를 움직였다.
그 당시는 실용음악과가 있는 예고가 흔치 않을 때라서, 고등학교 3학년생을 위한 위탁교육기관이 마치 대학 입시를 위한 계단 같은 역할을 할 때가 있었다.
전공을 하고 싶다고 생각한 뒤 3개월간의 준비로 시험을 치렀고, 그때 들고 있던 친구가 바로 이 악기였다. 그때 연주했던 시험곡은 Lee Ritenour의 「Rio Funk」(BASS Marcus Miller)였다.
돌이켜보면 이때는 그저 베이스를 치는 것이 너무 재미있었다.
그리고 그 즐거움이 결국 나를 움직였다.
Teal Green.
색이 정말 예뻤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내가 기억하는 건 색보다 누가 이 악기를 내게 주었는가에 더 가깝다.
어머니께서 사주신 첫 펜더였다.
당시에는 그저 갖고 싶었던 악기를 갖게 되어 좋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된 부분도 있었다.
쉽지 않은 상황에서도 자식에 대한 사랑을 최선을 다해 표현해주셨다는 것을.
너무 좋아했던 악기이지만 대입 준비를 위해 몇 가지 악기를 거쳐 Fender ’78 Original Jazz로 악기를 바꿨고, 그리하여 이 악기는 내 기억 속 저편으로 물러나 나를 기다려줬다.
한동안 이리저리 악기를 사고팔고, 이 악기 저 악기 정말 많이 경험하며 악기 여행을 다닐 때도 한편엔 계속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
2015년 하반기쯤, 입시 때 함께 시험을 준비했던 친구와의 대화에서 이 악기의 기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언젠가 이 악기를 꼭 다시 데려와야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그때였다.
그리고 그 마음이 실제로 이루어진 건 9년이 지난 2024년이었다.
그래서 이 악기를 다시 데려왔을 때는 단순히 예전 악기를 되찾은 기분이 아니었다.
이 악기와 함께했던 시간이 한꺼번에 따라 돌아왔기 때문이다.
이 악기를 들고 고등학교 선배, 호원대 선배들과 밴드를 했고, 내 인생 첫 홍대 클럽 공연도 이 악기와 함께했고, 또 다른 팀으로 EBS 다큐멘터리 촬영도 했다.
그때 함께 연주했던 피아니스트는 시각 장애를 가진 분이셨고, 그 이유 때문인지 특히 듣는 귀가 뛰어나 내 연주 발전에 크게 도움을 주셨다.
(그 경험은 훗날 내가 THE STANDARD GROOVE MAGAZINE에 읽어주기 기능과 고급 음성 기능을 넣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
이 악기와 함께 대구 계명대학교에서 진행되었던 실용음악 밴드 콩쿨에도 참가했다.
당시 연주했던 곡은 Scott Wilkie의 「In Comes The Ausgang」. 그 시절의 밤들은 아직도 기억난다.
홍대역 2번 출구 주유소 뒷골목. 요술뱀 합주실에서 밤을 새워가며 합주하고, 그 뒤 각자의 길을 응원하며 헤어졌던 사람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리는 아직 만나고 있다.
‘요술뱀 패밀리’라는 이름으로 약 20년째.
이 악기의 이야기는 입시 때 사용했던 Fender ’78 Original Jazz로부터 시작된다.
Teal Green 펜더를 떠나보내고 시작된 악기 여행에서 만나, 입시를 동행하게 된 악기다.
소리도 좋고 무게, 색감 등 모든 요소가 마음에 들었지만 입시를 한 주 앞두고 같은 연습실을 쓰던 친구가 실수로 악기에 물을 쏟았고, 소리가 흐려졌다.
그때 스승님께서 물려주셨던 악기가 바로 Fender ’63 Original Jazz.
너무 좋은 악기였지만, 내 눈앞에서 악기가 망가졌던 그 사고 이후로는 정말 좋아하는 악기를 그대로 들고 다니기가 마음에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그 맛을 이어가고 싶어 선택한 것이 이 Fender Jazz ’64 Custom Shop Relic이었다.
그리고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
버벌진트 밴드를 시작으로 셀 수 없이 많은 공연과 녹음 세션까지, 많은 일을 했다.
전국 팔도와 북미 투어까지 모든 곳을 같이 돌아다니고, 여러 방송국을 오가며 이 악기와 정말 많은 기억을 만들었다.
하지만 가장 소중한 기억은 7만 명의 관객 앞 무대도, 신년 카운트다운 생방송도 아니다.
사랑하는 할머니께 이 악기를 들려드리고 함께 사진을 찍었던 순간.
내가 연주자로 살아오며 얻은 수많은 기억 중에서, 아마 가장 소중한 장면 중 하나다.
2024년에는 김해에서 틸그린을 다시 데려왔다.
2025년 7월에는 삼척에서 데임을 다시 데려왔다.
그리고 2026년 9월, 마지막 조각이었던 올림픽 화이트 Fender Jazz ’64 Custom Shop Relic을 공릉에서 다시 데려왔다.
부담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세 악기가 다시 한자리에 놓인 순간, 이상하게 마음이 꽉 찼다.
여기저기 흩어져 기억에만 남아 있던 드래곤볼이 다시 완성된 기분이었다.
이 세 악기를 보면 Toy Story의 우디, 버즈, 제시가 떠오른다.
한때는 데임 재즈 스페셜에게 펜더 틸그린 디럭스가 그런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새로운 친구가 들어오면서 자기가 밀려나는 것 같은 순간.
하지만 나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하지 않았다.
둘 다 사랑했고, 둘 다 함께 연주했다.
누군가가 들어왔다고 해서 먼저 있던 누군가의 의미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각자 다른 시간을 가지고 있고, 각자 다른 나를 기억하고 있으니까.
그래서 이 세 대는 내게 단순한 컬렉션이 아니다.
하나는 시작을 기억하고, 하나는 가족을 기억하고, 하나는 내가 연주자로 살아온 시간을 기억한다.
그리고 이제야 알 것 같다.
내가 악기를 모은 것이 아니라,
내가 살아온 시간을 다시 데려오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