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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IPOD — Ep.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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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 붙은 악기가 실력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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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Song Nils Landgren Funk Unit feat. Maceo Parker — Simple Life (Live) →

자코 시그니처를 사고도, 데임 재즈 스페셜을 들고 무대에 섰던 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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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력은 좋은 악기가 아니라, 꺼낸 횟수가 만든다.

똑같은 곡을 쳐도 악기마다 느낌이 다르다. 소리의 질감도 그렇지만, 손이 악기에 닿는 부분의 감촉이 전부 다르다.

손에 붙은 악기는 착좌감 좋은 소파 같다. 연주가 정말 편하다. 드럼머신을 켜 두면 멈추기 어려울 만큼 연주가 계속 이어진다.

스펙이 좋아도 마음이 가지 않는 악기는 케이스 안에 들어가 있게 된다. 반대로, 좋아하는 연주자가 쓰던 것과 닮은 악기를 들고 있으면, 그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 만족감이 악기를 한 번 더 꺼내게 만든다.

천 위에 놓인 크림색 베이스
01

늘 꺼내져 있는 두 대

지금 가장 손이 많이 가는 악기는 두 대다. 펜더 커스텀샵 64, 그리고 멕시코 재즈 로드원 60 피에스타 레드.

둘 다 늘 꺼내져 있다. 커스텀샵 64는 정해진 자리 없이 집 안을 돌아다닌다.
거실 소파 옆, 침대 옆, 작업방 컴퓨터 옆, 악기 보관방까지 방마다 스탠드를 하나씩 두고, 내가 가는 곳으로 악기를 들고 간다.

연주까지 가는 단계는 짧을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악기를 늘 꺼내 둔다.
유튜브를 보면서도 치고, 눈 뜨면 한 번 치고, 자기 전에 한 번 치고, 누워서도 친다. 유튜브 쇼츠를 넘기듯, 틈날 때마다 악기를 손에 든다.

로드원 60은 작업실에 두고 쓰는 악기다. 간단한 데모를 녹음할 때도 이 악기를 든다.

붉은 재즈 베이스를 연주하는 모습
로드원 60 피에스타 레드.

이 악기를 산 이유는 64와 달라서가 아니라 비슷해서였다. 스승님께 물려받았던 63 오리지널과 커스텀샵 64의 60년대 넥을 재현한 악기라 손에 잘 붙었다.
소리는 다르지만, 절반도 안 되는 값에 비슷한 손 느낌을 준다. 펜더 라인업 중에서 가성비가 가장 좋은 악기가 아닐까 싶다.

레슨 때도 이 악기를 쓴다. 레슨생들은 레슨용으로 둔 펜더 USA 스탠다드 재즈를 더 좋아하는 편이지만, 로드원을 더 좋아하는 사람도 많다. 나도 로드원이 더 좋다.

나는 보통, 한 번 손에 붙은 악기를 자주 쓴다.

02

손에 붙는다는 것

악기를 치는 사람이라면 아는 표현이다. 이 악기, 손에 붙는다.

넥 느낌, 무게, 소리, 바디 크기. 숫자로 적기 어려운 감각의 문제다. 분명 스펙상으로는 같은 쉐입, 같은 곡률인데도 악기마다 느낌이 다 다르다.

63 오리지널, 커스텀샵 64, 로드원 60도 그렇다. 셋 다 지판 곡률은 7.25인치, 너트 폭은 38.1mm로 같고, 1번 프렛의 넥 두께도 모두 20mm 안팎이다. 차이는 1mm가 채 안 된다.
그런데 손에 닿는 느낌은 셋이 다 다르다.

애플 정품 악세사리를 떠올리면 쉽다. 같은 기능을 하는 제품은 많지만, 손에 쥐고 쓸 때의 질감이 다르다. 사람들은 그걸 '감성'이라는 한 단어로 부른다.
손에 붙는 악기도 그렇다. 스펙표에는 적히지 않는 감성이다.

앰프에 연결하지 않고 쳐도 넥과 바디의 울림이 손으로 전해진다. 그 울림에서 악기의 질감이 느껴진다. 줄의 텐션, 우레탄이냐 락카냐 하는 마감, 넥 뒤에 코팅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도 질감이 많이 달라진다.

손에 붙는 데 걸리는 시간은 신기하게도 평균을 내기 어렵다.

안 붙는 악기는 아무리 쳐도 안 붙고, 딱 붙는 악기는 처음 잡아도 내 악기 같다.

두 번째 크로니클(Ep.02)에서 올리밴더 아저씨의 말을 꺼낸 적이 있다. 연주자가 악기를 고르는 게 아니라, 악기가 연주자를 고르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손에 붙는 악기를 만날 때마다 그 말이 더 와닿는다.

03

케이스 속의 악기들

좋은 악기인데 케이스에 들어가 꺼내지 않게 되는 경우는 너무 많다.

켄 스미스가 그랬다. 쓰루넥에 35인치 5현, 넥감이 참 좋았다. 얇고 작은 바디인데 들면 나무의 밀도가 느껴질 만큼 묵직했고, 지판도 엄청 단단했다.
방송을 돌 때 헤드가 예쁘게 나와서 좋아하던 악기였다.

카페에서 5현 베이스를 들고 있는 모습
켄 스미스 5현.

그런데 지판 곡률이 너무 평평해서 연주하기가 어려웠다.
커스텀샵 64를 들고 다니기 시작하면서, 켄 스미스는 가방에 들어간 채 팔 때까지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팔 때 아쉽지 않았다. 사이즈도 안 맞는 비싼 재킷을 갖고 있다가, 핏이 딱 맞을 친구에게 건넨 기분이었다. 오히려 좋았다.

악기는 정말 좋았는데, 나와 맞지 않았을 뿐이다.

펜더 재즈 디럭스 Z2 틸그린에서 자코 파스토리우스 시그니처로 갈아탄 적도 있다. 액티브보다 패시브 베이스를 쓰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받았고, 틸그린을 떠나보내며 데려올 수 있는 최선의 선택지가 그 악기였다.

나는 틸그린이 훨씬 좋았다. 내가 바꾸고 싶어서 바꾼 게 아니었다. 그래서 손이 잘 가지 않았다.

그 무렵 서울재즈아카데미 정기공연이 있었다. 이번 ONE SONG인 「Simple Life」를 연주한 무대다.
새로 데려온 자코 시그니처로 연습을 하는데,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악기가 정말 손에 안 붙어서 어려웠다. 아마 우레탄 마감의 바디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데임 재즈 스페셜도 똑같은 우레탄 마감인데 느낌이 달랐다.
결국 무대에는 데임을 들고 올라갔다. 데임이 나와 더 잘 맞았다.

자코 시그니처는 금방 뮤직맨으로 바꿨고, 야마하도 사봤다. 악기 여행은 그렇게 시작됐다.

둘 다 좋은 악기였지만 나에게는 맞지 않았다. 뮤직맨은 넥 질감이 손에 잘 붙지 않았고, 픽업 위치도 불편했다. 야마하는 특유의 야마하스러운 소리가 너무 강하게 느껴져서 도저히 슬랩을 할 수가 없었다.

04

연주를 보는가, 악기를 보는가

처음부터 비싼 악기를 사면 좋다. 첫차를 꼭 중고 경차로 시작할 필요는 없다.
좋으면 좋을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처음부터 비싼 악기로 시작하면, 연주감이나 소리보다 목재와 브랜드 같은 스펙에 눈이 가는 경우를 많이 봤다.

그게 잘못된 건 아니다. 악기 자체가 좋은 것일 수도 있다. 새 악기를 데려오면 그 악기가 궁금해서 오히려 연습량이 엄청 늘기도 한다. 긍정적인 면이라고 본다. 나도 그랬으니까.

악기 여행을 정말 많이 다녔다. 새 악기를 사면 예쁘고, 신기하고, 재밌어서 몇 주 동안 밤새 그 악기를 붙잡고 논다.
그러다 보면 안 되던 부분, 헷갈리던 부분, 손이 멈칫하던 자리가 어느새 풀려 있다.

다만 내가 보는 방향이 연주인지, 악기 자체인지는 되돌아볼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레슨생에게는 스펙으로 선입견을 갖지 말라고 말한다. 특이한 목재는 보통 비싸다. 하지만 특이한 목재가 곧 좋은 목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톤은 무엇보다 손이 제대로 된 소리를 내는 데서 나오고, 스펙은 생각만큼 중요하지 않다. 봐야 할 것은 손과 맞닿는 질감이다.

내 눈에 가장 예쁜 악기

중학교 3학년 때 처음 산 베이스는 3만원짜리 중고였다. 고른 이유는 하나였다. 색깔이 마음에 들어서.
줄이 한참 떠 있어 누르기도 힘든 악기였는데, 원래 그런 줄 알고 몇 달을 쳤다.

오래 방치되어 바짝 마른 베이스 지판

그래서 이 글을 읽는 사람이 오늘 딱 하나 해 봤으면 하는 게 있다.

내가 어떤 소리를 내고 싶은지, 내 눈에 가장 예쁜 악기가 무엇인지 떠올려 보자.

My Everyday Tripod
  1. 01 손에 붙은 악기
  2. 02 늘 꺼내져 있는 자리
  3. 03 내가 보는 방향
One Song

Nils Landgren Funk Unit feat. Maceo Parker — "Simple Life (Live)"

자코 시그니처를 사고도, 데임 재즈 스페셜을 들고 무대에 섰던 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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